"日 죽어도 넘을 수 없다더니"…'K-배터리'로 한수위 도약 [한경우의 케이스 스터디]

입력 2021-07-10 19:00   수정 2021-07-10 19:55


몇년 전만 해도 한국의 주력산업에 대해 "소재와 중간재 등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높다"며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었다 깨나도 어렵다"는 말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꼽히는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6년 에너지공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조차도 “고성능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 전구체(중간부품)는 상당부분을 일본 니찌아와 스미토모금속공업에, 고급 음극재 소재인 인조흑연은 100%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며 “인조흑연은 한국이 개발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포기하고, 차세대 음극재 개발에 나서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소재의 국산화는 먼 얘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의 배터리 소재 산업의 역량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고성능 배터리용 양극재 전구체는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가 만들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다던 인조흑연은 포스코케미칼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양산설비를 짓는 중입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는 분리막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자랑합니다. 또 고급 전해질 분야에선 천보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과점사업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8일 충북 청주시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회’에서 “반도체이 이어 배터리는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자랑이다. 제2의 반도체로 확실히 성장해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범용 소재들이 포함되는 전체 소재 시장에서는 중국에 점유율이 밀리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글로벌 양극재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2%인 반면, 중국은 54.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음극재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8.7%로 중국(66.4%)과 일본(23%)에 밀립니다. 중국과 일본이 각각 54.6%와 33.4%를 차지하고 있는 분리막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1.9%에 불과합니다.

숫자만 보면 위기감을 느낄 만하지만, 배터리 완제품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술 경쟁력 부분에서는 한국이 중국을 앞섭니다.

우리의 기술 경쟁력을 설명하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배터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액)이라는 단어가 반복될 겁니다. 이렇게 네 가지는 이차전지의 4대 구성요소라고 불립니다.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는 음극에 저장돼 있던 리튬이온이 전해질을 타고, 음극에서 이온이 빠져 나오면서 생긴 전자는 도선(전선)을 타고 각각 양극으로 옮겨가면서 전기 에너지를 발산(방전)합니다. 전기 에너지를 가해 양극에 붙어 있던 리튬이온을 다시 음극로 돌려보내는 식으로 충전됩니다.


한국 소재기업, 하이니켈·습식분리막·LiFSI전해질 기술 주도
우선 양극재 부문은 범용인 LFP(리튬인산철)도 꾸준히 수요가 늘지만, NCM(니켈·코발트·망간)이나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삼원계 양극재의 수요 증가세가 더 가파릅니다. 삼원계 양극재 분야에선 중국은 후발주자입니다. 몇 년 전 중국 당국이 화재 위험을 이유로 자국 내 전기버스에 삼원계 양극재가 들어간 배터리 탑재를 금지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땐 중국 업체들이 LFP 양극재만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최근에는 니켈 함량을 얼마나 높일지에 대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니켈이 많을수록 에너지밀도가 더 높아져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거든요. 이를 위해 NCM에 알루미늄을 더한 사원계 양극재인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의 개발도 이뤄졌습니다. 중대형 배터리에서 니켈함량을 높이기 위한 기술은 한국의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음극재 분야 역시 천연흑연에서 인조흑연으로 넘어가는 추세입니다. 흑연은 탄소들이 육각형의 결정을 이루고 있는 광물로, 리튬이온들이 이 육각형안에 저장됩니다. 천연흑연과 비교해 인조흑연이 결정 구조가 더 안정적이라 리튬이온이 쉽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충방전을 많이 해야 하는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을 늘려줄 수 있죠. 최근에는 실리콘 첨가를 통한 음극재 성능 개선도 이뤄지는 중입니다. 실리콘은 흑연보다 물성이 더 좋지만 열이 가해지면 부풀어 오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스웰링 현상을 억제하면서 첨가하는 실리콘 양을 늘려가는 식으로 음극재 성능 개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극과 음극이 물리적으로 접촉해 전기합선이 일어나는 걸 막는 동시에 리튬이온은 통과시켜야 하는 분리막 역시 성능이 좋은 습식분리막을 중심으로 시장이 전환되는 중입니다. 습식분리막 시장은 일본의 아사이카세이와 도레이, 한국의 SK IET가 선도하고 있습니다.

전해액 시장은 중국계 3사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범용인 LiPF6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죠. 차세대 제품으로 불리는 LiFSI 등의 신규 리튬염은 가격이 비싸 소량을 첨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다만 최근 늘어나는 배터리 수요에 LiPF6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LiFSI와의 가격 차이가 줄었습니다. 이에 LiFSI 채용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LiFSI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 천보입니다.
“고성능 시장 선점하자” 공격적 증설 나선 소재기업들
고성능 이차전지 소재로의 전환이 진행되면서 국내 소재 기업들은 앞다퉈 증설에 나서고 있습니다.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 에코프로비엠 등이 대표적이다.

포스코케미칼의 설비 투자가 가장 공격적입니다. 이 회사는 내년부터 약 6000억원을 투자해 포항시 영일만4일반산업단지 안에 연간 생산능력 6만톤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지난 8일 밝혔습니다. 포항공장이 완공되고 나면 포스코케미칼의 양극재 생산능력은 연간 16만톤에 달하게 됩니다. 60킬로와트시(KWh)급 전기차 180만대에 들어가는 양이죠. 이에 더해 유럽, 미국, 중국 등에 연산 11만톤 규모의 공장을 짓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또 작년 7월 첫 삽을 뜬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은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모기업인 포스코는 리튬 생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죠.

엘앤에프는 2019년부터 대구 국가산업단지의 공장에 대한 투자를 매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연간 4만톤인 양극재 생산능력을 내년까지 12만톤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과 계약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장 투자 비용과 원료 확보를 위해 이달에는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도 했죠.

에코프로비엠도 해외 양극재 공장 투자를 위해 올해 하반기 4000억원 내외의 유상증자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7일 공시했습니다. 앞서 지난 5월25일에는 하이니켈계 NCM 양극재 생산 확대를 위해 2023년 완공을 목표로 1300억원을 투자해 3만톤 규모의 공장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고요.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일 개최한 스토리데이 행사에서 현재 연간 14억㎡인 SK IET의 분리막 생산 능력을 2025년 40억㎡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약 5조원이 투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천보입니다. 이 회사는 100% 자회사인 천보BLS를 통해 전북 군산시 새만금산업단지에 연산 2만톤 규모의 LiFSI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지난 7일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연간 1000톤 규모인 천보의 LiFSI 생산능력은 2023년 말 6000톤, 2026년말 2만1000톤으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꿈의 배터리’ 전고체, 이르면 2025년 상용화
우리 배터리 소재 기업들의 공격적 증설 계획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투자가 불안하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겠죠. 훨씬 성능 좋은 전고체배터리가 나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 소재 공장이 쓸모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쉽게 말해 '시티폰'에 실컷 투자했는데, '스마트폰'이 나오면 어쩔거냐는 우려입니다.

전고체배터리는 말 그대로 전해질이 고체인 이차전지입니다. 고체 전해질이 중간에 버티고 있으니 양극과 음극이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게 불가능해 분리막이 필요 없습니다. 액체 전해질을 채용한 배터리에 비해 화재 위험도 적습니다. 에너지밀도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어 전기차에 적용하면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800km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하고요. 이에 더해 급속 충전도 가능하답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역시 일본입니다. 도요타자동차가 파나소닉과 손잡고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리튬이온전지도 1991년 일본의 소니가 가장 먼저 상용화했습니다. 일본은 대부분의 기술에서 선점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삼성SDI가 가장 적극적입니다. 작년에만 8000억원 넘는 돈을 전고체배터리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다고 해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이노베이션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배터리 생산설비 증설에 소극적인 걸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SDI가 빠르게 전고체배터리로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성SDI의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7년입니다.
150년 넘게 생존한 납축전지처럼 공존 가능할듯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되면 기존 액체전해질을 채용한 배터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될까요. 최근의 투자는 아무 의미없게 될까요? 이는 역사에서 답을 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에서 찾아보면 됩니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의 주력제품인 LFP 양극재는 개발된 지 오래됐습니다. 삼원계나 사원계 양극재에 비해 에너지밀도는 낮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신기술의 산물인 삼원계나 사원계 양극재의 공급이 늘고 있지만, LFP 출하량도 여전히 성장세입니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죠. 테슬라도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델Y의 저가형 제품에는 LFP 양극재가 들어간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합니다. 또 전기차 개발에 나선 애플도 LFP 배터리를 선호한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멀리 가보자면 1859년에 개발된 납축전지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연기관차의 시동을 걸 때 전원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대부분 납축전지입니다. 최근 리튬이온전지에 밀려 산업 규모가 축소되고 있지만, ‘로케트 밧데리’로 유명한 세방전지가 여전히 연매출 1조원 내외를 기록하고 있죠.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삼원계·사원계 리튬이온배터리도 가격경쟁력을 키워갈 겁니다. 공격적으로 설비를 증설하는 데는 그 이유도 있을 겁니다. 납축전지가 150년 넘게 생존한 걸 보면, 이제 개발된 지 30년이 조금 넘은 리튬이온배터리의 퇴출을 걱정하기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은 우리 기업들의 투자를 응원해줄 때라고 봅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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